1.
생일이 어린이날이라고 해서 서정은 어린이에게 좋을 건 없었다.
다른 친구들은 어린이날에 어린이날 선물 받고 또 생일에 생일 선물 받는데, 난 꼭 하나로 합쳐서 받게 되더라. 생일파티를 할라치면 친구들이 자기 가족끼리 놀러가는 어린이날을 피해 미리 하거나 늦게 하거나. 생일은 1년 중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유일하게 주목받고, 아낌받고, 축복받는 주인공이 되는 날인데, 어린이날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친구들이 특별하게 대접받는 날이라서, 어린 마음에 쬐끔은 속상하기도 했지.
그래도 한 가지 좋았던 점이 있다면 공휴일인만큼 누구나 한 번 들으면 잊지 않고 기억해줬다는 것. 그건 돌고 돌아 스물다섯번째로 돌아오는 2008년의 어린이날에도 여전히 그래. 고마워요, 어린이날을 '서정은 어린이의 날'로 기억해주는 사람들.
2.
지난 스물네번의 생일마다 난 무얼 했더라.
유치원에서 5월에 태어난 친구들을 모아 한번에 축하파티를 해줄 때의 기억. 색동저고리도 입고, 종이 왕관도 쓰고, 사탕 목걸이도 걸고. 그리고 꼭 이성-_-친구가 볼에 뽀뽀도 하게 했다. (유치원 선생님 존경해요.) 그 뽀뽀해주는 친구를 생일파티 전에 뽑았는데, 한 남자아이가 무척 고맙게도 자기가 하겠다고 먼저 손을 번쩍 들었었다. 그리고 그 다음 해에도 그 아이가 또 손을 들었었는데, 솔직히 그 땐 좀 들지 말지, 하고 속으로 생각했었다. 으하하.
지금 또 만나도 그 손 좀 번쩍 들어줄 수 있겠니? (...)
내 달갑지 않은 표정을 보니 두 번째 뽀뽀였나보다.
동성친구한테 이런 격한 생일선물도 받고.
3.
어렸을 땐 생일이 되면 마냥 기쁘기만 했는데, 한 해 한 해 지날 수록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것 같다. 새삼 또 한 살 먹었구나 싶기도 하고. 와아, 내가 벌써 만 25세가 되는구나. 아침마다 타는 경의선 통근열차도 만 25세 미만 청소년할인이 더 이상 안 되겠구나. 이제 만 나이로도 정말 20대의 정점을 찍는구나. 어려보이는 게 좋다고들 하지만, '그냥 어린 게' 제일 좋은 거 아닌가.
나, 마음은 아직도 이팔청춘이야. 스물여섯다운 마음가짐은 아직 멀었어. (이게 다 내가 어린이날에 태어나서 그래. 이 천성적인 유치함.)
4.
이번 생일땐 연차를 써서 일본 여행을 갈 생각이었으나 휴가원을 결제받지 못해서 꽝. (바보) 아쉬운대로 별이 보고 싶어서 (지난 2005년 여름 밤의 추억과 최근 다시 버닝한 '유리가면'의 영향으로) 플라네타리움이 있는 천문대에 가려고 계획을 짰으나 때맞춰 비가 와서 꽝. 여행간다고 일부러 약속도 안 잡아놨었는데, 갑자기 모든 스케줄이 텅텅 비어버리고 말았다. 남들 다 놀러다니는 황금연휴에! 게다가 생일까지 꼈는데! 오빠는 모처럼의 연휴를 즐긴다며 나가고, 엄마아빠는 공짜 콘서트표가 생겼다고 멀리 잠실까지 데이트 가시고. 가만히 집에서 혼자 뒹굴고 있자니 쓸쓸하기 그지없다. 생일 이브가 왜 이렇게 암울한거야.
5.
생일을 가장 특별하게 보내는 방법은 뭘까. 혼자 떠나는 여행을 (결국 파토났지만) 생각해봤지만 사실 막상 엄마가 끓여주는 따뜻한 미역국 한 그릇도 없는 생일은 쓸쓸할 것 같아. 외국에서 좋은 구경거리 보고 있어도 혼자 돌아다니는 생일은 쓸쓸할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