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시작은 어중간하게 쏟아붓는 비와 쌉싸름한 생리였다. 어쩐지, 그저께 쯤부터 피부가 정직하게 뾰루지를 피우더니만, 아침부터 꼬인 아랫배가 평소와는 다른 의미심장한 느낌을 준다했다. 그닥 자극적이지 않은 빗소리에 속아서 맨발에 슬립온을 신고 나왔다가 그만 새까맣게 젖어버렸다. 그래도 기차역까지는 걸어가는 게 좋다. 중고등학교 개학일 이래로 아침의 마을버스는 미어터지니까.
비오는 날의 탈 것들에선 비린내가 난다. 통근열차 정액권을 새로 끊고 비린내 나는 기차에 올라타서 다이어리를 펼쳤다. 한 2월까지는 글씨로 빽빽하게 찬 다이어리는 3월부터 게으름이 묻어난다. 그치만 월경주기만큼은 잊지 않고 꼬박꼬박 (만에하나 누군가가 다이어리를 펼쳤을 때 눈치채지 못하도록 소심하게 * 모양으로) 표시해왔다. 사실 열심히 표시만 할 뿐, 날짜가 너무 이른지 늦는지 셈해보진 않는다. 설령 늦더라도 아- 늦는구나- 생각할 뿐, 병원 검진을 받아볼 것도 아니면서. 그저 날짜를 표시하는 것만으로도 난 여성으로서의 건강을 확실하게 챙기고 있다는 밑도 끝도 없는 믿음이 생기는 것이다.
다이어리가 벌써 9월 페이지로 넘어간다. 아, 오늘은 1일이구나. 1일부터 통근열차 정액권을 개시하고, 1일부터 생리를 시작하고. 참 계산하기 편리하게 돌아간다. 백지상태인 9월의 하루 하루에 기억이 허락하는 한에서, 구두로 맺어놓은 모임 약속, 녹음 스케줄, 그리고 추석 연휴를 끄적였다. 그리고 8월 페이지로 돌아가서, 8월 중순부터 미처 기록하지 못한 만남과 스케줄을 토해냈다. 이미 끝난 일정이더라도, 그렇게 적어두면 내가 이런 저런 일들을 했구나-하며 기억을 추억할 수 있어서.
8월엔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여름 휴가가 있었고, 콘서트를 갔고, 처음으로 런웨이를 구경했으며, 파자마파티를 했다. 8월 9일, 16일, 23일, 30일. 매 토요일마다 사건이 일어났다. 내 살아온 스물여섯해 중 한 달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좋아하고 원망하고 행복하고 상처받고 북치고 장구치고 쇼 아닌 쇼를 했다. 그리고 그 다이나믹한 감정들은 말일에 어중간하게 블렌드되어 요상한 맛으로 혀 끝에 남았다. 이 달콤씁쓸하면서 짠듯 밍밍한 8월의 입맛은 그대로 9월까지 넘어와버렸다.
1일부터 통근열차 정액권을 개시하고, 1일부터 생리를 시작하고. 참 계산하기 편리하게 돌아간다. 1일부터 신경쓰지 말고, 1일부터 초월하고. 이런 건 안되나? 계산하기 편리하게.
어쨌든, 빗소리가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9월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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